6.25한국전쟁 - 우리의自畵像
한국동란 - 우리의自畵像
이번 주 월요일이면, 육.이오 한국동란이 발발한지 어언 61년-
두번다시 기억하기도 싫지만,여기에 실린 사진들은
불과 반세기전 우리의 自畵像이었습니다.
지긋지긋한 가난과 피비린내는 살육의 현장들이
그 때는,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습니다. 육이오를 겪지않은 세대는 이러한 참상은 그저 그런 것이 있었구나하고 무심히 바라보겠지요.
그러나 육이오를 뼈져리게 겪은 세대는 끔직한 추억입니다. 지금 좌경세력은 이러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.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좌경세력의 준동을
좌시하지 말고 준엄히 응징하십시다.
이러한 처참한 몰골로 야생초처럼 끈질게 견뎌온 모진 생명들...
불과 반세기가 흐른 지금,우리는 너무 빨리 이 아프고도 소중한
기억들을 까맣게 망각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??
이 사진들은 알바니아 태생으로 1,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,
한국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가 디미트리 보리아
(1902~1990)가 駐日 美극동사령부 사진반에서 일할 때 한반도
각지를 돌며 촬영한 것이다. ▶
전쟁은 체면이나 양심, 도덕률.
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
존재한다.
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나가
선 얼굴들에게
손바닥을 벌려야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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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.
그리고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.
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
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,
아니면 땔감일까 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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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위와 배고픔에 지친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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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
시민혁명과 쿠데타,
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
"의지의
한국인"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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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,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
폐허가 된 터에
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.
고난의 1950 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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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.
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
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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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,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
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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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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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.
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
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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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
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.
<포
로수용소-거제도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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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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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민군 포로들의 숙소.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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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.
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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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.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.
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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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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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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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
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,칼 등을 들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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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.
삶과 죽음이!
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
운이 좋은 사람들은
살아나고,
운이 다한 사람들은
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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